아리 애스터 감독은 첫 작품부터 관객의 심리를 쥐락펴락했다. 그의 데뷔작 유전(Hereditary)은 가족의 비극을 통해 진정한 공포의 근원을 심리적으로 파헤친다. 영화를 보는 내내 숨 막히는 긴장감과 더불어, 끝난 후에도 쉽게 떨칠 수 없는 불안함이 마음에 남는다. 충격적인 장면을 포함하여 특유의 분위기로 유명한 작품.
가족 비극이 공포로 변하는 순간
유전의 이야기는 주인공 애니(토니 콜렛)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며 시작된다. 장례식 장면부터 영화는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풍긴다. 애니의 어머니는 생전에 매우 비밀스럽고 기이한 삶을 살았으며, 그녀의 죽음 뒤에 남겨진 가족들은 그동안 몰랐던 어두운 역사를 하나씩 마주하게 된다. 특히 애니의 딸 찰리(밀리 샤피로)가 겪는 기이한 현상과, 이후 벌어지는 충격적인 사건들은 영화의 스토리에 몰입하게 만든다.
가장 유명하면서도, 강렬했던 장면은 찰리의 갑작스러운 죽음이다. 입에 담기에도 무섭고 두려운 장면인데, 예상치 못한 사고로 아이를 잃은 가족의 슬픔과 죄책감은 공포 이상의 감정적 충격을 준다. 이때부터 영화는 귀신이나 괴물의 공포를 넘어선다. 가족의 상실과 비극, 그리고 그로 인한 감정의 파괴가 진정한 공포로 변한다. 특히 아들 피터(알렉스 울프)가 겪는 트라우마와 죄책감은 관객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진다. 나 역시 그 장면을 보고 나서 한동안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애니의 남편 스티브(가브리엘 번)는 현실을 부정하려 애쓴다. 하지만 가족 내 불화와 애니의 이상 행동으로 인해 점차 무너져 간다. 영화 후반부로 갈수록 가족은 서로를 의심하고, 공포는 현실로 다가온다. 가장 안전해야 할 '가족'이라는 공간이 오히려 가장 위험한 곳이 되는 순간, 그 공포는 최고조를 달린다.
아리 애스터 감독의 연출과 심리적 공포
아리 애스터 감독은 유전에서 전형적인 공포영화의 연출 방식을 사용하지 않는다. 갑작스러운 점프 스케어나 과장된 사운드 효과 없이도, 그는 관객을 서서히 공포의 늪으로 끌어들인다. 영화 대부분이 일상적인 공간에서 벌어지는데, 오히려 이런 평범한 환경이 현실감을 높여서 공포를 크게 느끼게 한즌 듯 하다. 집 안에서의 촬영 기법은 마치 우리가 그 가족의 일원이 된 것처럼 느끼게 한다.
특히 애니가 미니어처 하우스를 만드는 장면은 뭔가를 계속 의미하는 듯 해서 찜찜함을 가지고 왔다. 작은 집 속 인형들이 마치 실제 인물들처럼 보이는 연출은 영화의 주제와도 잘 맞아떨어진다. 가족들이 마치 누군가에 의해 조종당하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이는 결국 영화 후반부에서 드러나는 초자연적 요소와도 연결된다. 마치 애니와 그의 가족이 거대한 게임의 말처럼 보였다.
영화는 종교적 상징과 오컬트적인 요소를 통해 관객의 심리를 자극한다. 후반부에 밝혀지는 가족의 비극이 단순한 사고나 우연이 아니라는 사실이 드러났을 때, 그 불안감은 최고조에 달한다. 평범해 보였던 일상적인 사건들이 사실은 모두 계획된 의식의 일부였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소름이 돋았다. 이때 영화의 제목인 '유전'이 단지 가족 간의 혈통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세대를 넘어 전달되는 저주와 운명을 상징한다는 점을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유전이 남긴 심리적 여운과 메시지
유전이라는 제목처럼 이 영화는 혈통뿐 아니라 감정적 유산, 죄책감, 트라우마가 대물림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가족은 단순히 초자연적 존재의 희생양이 아니라, 그들 스스로 만들어낸 감정의 덫에 갇혀 있다고 본다. 영화를 보고 난 후에도 충격이 조금 오래 남았다. 마치 내가 그 가족의 일원이 된 것처럼 답답함과 무서움이 느껴졌다. 아리 애스터 감독은 "진정한 공포는 외부가 아닌 내부에서 온다"는 메시지를 던진다. 초자연적 현상이 아닌, 우리 안에 숨어 있는 감정적 상처와 그것이 가족을 어떻게 파괴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유전은 공포영화의 틀을 넘어 심리적 깊이를 더한 작품이다. 가족의 비극을 통해 인간의 내면에 존재하는 두려움을 끌어내며, 단순히 무서운 장면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관객에게 심리적 공감을 이끌어낸다. 혼자 어두운 환경을 만들어놓고 공포영화 보는 것을 좋아하는데 유전은 그러기에 찝찝하고 소름돋는 기분이 들어서 밝은 낮에 감상했다. 공포영화 매니아들에게는 매우 무서운 영화까지는 아니겠지만 전반적인 분위기나 가족의 심리 묘사가 숨막히는 기분이 들게 한다. 그럼에도 공포영화를 좋아한다면 보기를 추첝한다. 영화를 다 보고 나서도 오랫동안 마음속에 남는 불안감과 여운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유전은 독보적인 작품 중 하나임에는 틀림없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