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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2018), 가족의 비극에 깔린 공포 심리학

by 생각흔적 2025. 3. 8.

유전 영화 포스터


영화 유전은 2018년에 개봉한 공포 영화로, 가족의 비극과 초자연적인 요소가 결합된 작품이다. 아리 애스터 감독의 장편 데뷔작으로, 심리적 공포와 숨 막히는 연출로 관객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이 영화는 단순한 점프 스케어에 의존하지 않고, 서서히 쌓아 올려지는 불안과 긴장감을 통해 공포를 극대화한다. 또한, 가족이라는 안전한 공간이 무너지는 과정과 그 안에서 벌어지는 감정적인 붕괴를 세밀하게 묘사하면서 깊은 여운을 남긴다.

가족 비극이 공포로 변하는 순간

유전의 이야기는 주인공 애니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며 시작된다. 장례식 장면부터 영화는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풍긴다. 애니의 어머니는 생전에 매우 비밀스럽고 기이한 삶을 살았으며, 그녀의 죽음 뒤에 남겨진 가족들은 그동안 몰랐던 어두운 역사를 하나씩 마주하게 된다. 특히 애니의 딸 찰리가 겪는 기이한 현상과, 이후 벌어지는 충격적인 사건들은 영화의 스토리에 몰입하게 만든다.

가장 유명하면서도 강렬했던 장면은 찰리의 갑작스러운 죽음이다. 입에 담기에도 무섭고 두려운 장면인데, 예상치 못한 사고로 아이를 잃은 가족의 슬픔과 죄책감은 공포 이상의 감정적 충격을 준다. 이때부터 영화는 귀신이나 괴물의 공포를 넘어선다. 가족의 상실과 비극, 그리고 그로 인한 감정의 파괴가 진정한 공포로 변한다. 특히 아들 피터가 겪는 트라우마와 죄책감은 관객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진다. 나 역시 그 장면을 보고 나서 한동안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러한 가족의 비극은 단순한 우연이 아닌, 과거의 비밀과 오컬트적인 요소에 의해 계획된 결과로 드러난다. 영화는 Paimon이라는 악마를 통해 이러한 요소를 강조하며, 이는 The Goetia: The Lesser Key of Solomon the King에서 영감을 받은 요소이다. 이러한 종교적 상징과 오컬트 요소는 영화의 긴장감을 높이고, 관객에게 깊은 불안감을 준다.

애니의 남편 스티브는 현실을 부정하려 애쓴다. 하지만 가족 내 불화와 애니의 이상 행동으로 인해 점차 무너져 간다. 영화 후반부로 갈수록 가족은 서로를 의심하고, 공포는 현실로 다가온다. 가장 안전해야 할 가족이라는 공간이 오히려 가장 위험한 곳이 되는 순간, 그 공포는 최고조에 달린다. 결국 이 영화는 단순한 공포가 아닌 가족의 관계가 어떻게 무너지는지, 인간이 극한의 상황에서 얼마나 취약한 존재인지에 대한 깊은 질문을 던진다.

아리 애스터 감독의 연출과 심리적 공포

아리 애스터 감독은 유전에서 전형적인 공포영화의 연출 방식을 사용하지 않는다. 갑작스러운 점프 스케어나 과장된 사운드 효과 없이도, 그는 관객을 서서히 공포의 늪으로 끌어들인다. 영화 대부분이 일상적인 공간에서 벌어지는데, 오히려 이런 평범한 환경이 현실감을 높여서 공포를 더욱 크게 느끼게 만든다. 집 안에서의 촬영 기법은 마치 우리가 그 가족의 일원이 된 것처럼 느끼게 한다.

특히 애니가 미니어처 하우스를 만드는 장면은 뭔가를 계속 의미하는 듯해서 찜찜함을 불러온다. 작은 집 속 인형들이 마치 실제 인물들처럼 보이는 연출은 영화의 주제와도 잘 맞아떨어진다. 가족들이 마치 누군가에 의해 조종당하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이는 결국 영화 후반부에서 드러나는 초자연적 요소와도 연결된다. 마치 애니와 그의 가족이 거대한 게임의 말처럼 보인다.
또한, 애스터는 장면 전개 속도를 조절하여 서서히 긴장감을 쌓아가는 슬로우 번 방식을 사용했다. 이는 갑작스러운 충격적인 순간과 대조를 이루며, 그 순간들이 더욱 강렬하게 느껴지도록 했다. 카메라 이동과 프레임 구성을 통해 캐릭터들이 고립된 공간에 갇혀 있는 느낌을 주며, 보는 사람들에게 불안감을 유발한다. 특히 Pawel Pogorzelski 촬영 감독과의 협업은 영화의 심리적 공포를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Pogorzelski는 애스터의 비전을 깊이 이해하고, 그의 촬영 기법은 캐릭터의 심리를 시각적으로 전달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더하여 공포 영화 답게, 종교적 상징과 오컬트적인 요소를 통해 관객의 심리를 자극한다. 후반부에 밝혀지는 가족의 비극이 단순한 사고나 우연이 아니라는 사실이 드러났을 때, 그 불안감은 최고조에 달한다. 평범해 보였던 일상적인 사건들이 사실은 모두 계획된 의식의 일부였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소름이 돋는다. 이때 영화의 제목인 유전이 단지 가족 간의 혈통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세대를 넘어 전달되는 저주와 운명을 상징한다는 점을 확실히 느낄 수 있다.

유전이 남긴 심리적 여운과 메시지

유전이라는 제목처럼 이 영화는 혈통뿐 아니라 감정적 유산, 죄책감, 트라우마가 대물림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가족은 단순히 초자연적 존재의 희생양이 아니라, 그들 스스로 만들어낸 감정의 덫에 갇혀 있다고 본다. 영화를 보고 나서도 충격이 조금 오래 남았다. 마치 내가 그 가족의 일원이 된 것처럼 답답함과 무서움이 느껴졌다. 아리 애스터 감독은 진정한 공포는 외부가 아닌 내부에서 온다는 메시지를 던진다. 초자연적 현상이 아닌, 우리 안에 숨어 있는 감정적 상처와 그것이 가족을 어떻게 파괴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유전은 공포영화의 틀을 넘어 심리적 깊이를 더한 작품이다. 가족의 비극을 통해 인간의 내면에 존재하는 두려움을 끌어내며, 단순히 무서운 장면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관객에게 심리적 공감을 이끌어낸다. 혼자 어두운 환경을 만들어놓고 공포영화 보는 것을 좋아하는데 유전은 그러기에 찝찝하고 소름 돋는 기분이 들어서 밝은 낮에 감상했다. 공포영화 매니아들에게는 매우 무서운 영화까지는 아니겠지만 전반적인 분위기나 가족의 심리 묘사가 숨 막히는 기분이 들게 한다.

그럼에도 공포영화를 좋아한다면 보기를 추천한다. 영화를 다 보고 나서도 오랫동안 마음속에 남는 불안감과 여운을 느낄 수 있다. 유전은 독보적인 작품 중 하나임에는 틀림없어 보인다. 특히 아리 애스터 감독의 연출 방식은 단순한 공포를 넘어 인간 심리의 가장 깊은 곳까지 도달하는 힘이 있다. 단순히 무섭다는 감정보다, 영화가 끝난 뒤에도 계속해서 곱씹게 만드는 요소가 많아 공포영화의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