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를 보고 나면 머릿속이 꽉 찬 느낌이 든다. 멀티버스라는 다소 복잡한 설정을 가졌지만, 결국엔 우리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가족 이야기로 돌아오는 이 영화는 신선하면서도 묵직한 여운을 남긴다. 다니엘 콴과 다니엘 쉐이너트 감독이 만들어낸 이 작품은 아시아적 정서와 서양적 스토리텔링을 훌륭하게 엮어내며, 관객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선사한다.
아시아적 정서와 서양적 스토리텔링의 조화
영화의 주인공 에블린은 미국에서 세탁소를 운영하며 살아가는 이민 1세대다. 그녀의 삶은 매일 반복되는 업무와 쌓여가는 세금 문제, 끊임없는 스트레스로 가득 차 있다. 하지만 그녀가 가장 힘들어하는 것은 경제적인 문제보다 가족과의 관계다. 남편 웨이먼드는 다정하고 긍정적인 성격이지만,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데 적극적이지 못하다. 딸 조이와의 갈등은 더욱 깊어져만 가고, 세대 차이와 문화적 차이 속에서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 채 점점 더 멀어져 간다. 부모의 기대와 자녀의 자아 사이의 간극은 단순한 가족 갈등을 넘어, 이민자로서의 정체성과 문화적 충돌까지 연결되며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가 된다.
하지만 영화는 이 갈등을 보여주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어느 날, 에블린은 평범한 일상 속에서 갑작스럽게 멀티버스의 존재를 알게 된다. 그리고 자신이 수많은 차원에서 다른 삶을 살아온 또 다른 자신들과 연결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 과정에서 그녀는 영화배우, 요리사, 무술 고수 등 전혀 다른 인생을 경험하며,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길에서 어떤 모습으로 존재할 수 있었는지를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이 모든 경험을 통해, 그녀는 지금의 현실을 다시 바라보게 된다.
멀티버스를 넘나들며 에블린이 깨닫게 되는 것은 단순히 초능력을 얻고 적과 싸우는 것이 아니다. 그녀는 수많은 가능성 속에서 자신이 놓쳐온 가족과의 관계를 새롭게 바라보게 되고, 특히 딸 조이를 진정으로 이해하게 된다. 조이가 겪고 있는 내면의 갈등과 상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두 사람은 점점 서로에게 다가간다. 영화는 아시아적 가족주의와 서양적 개인주의를 자연스럽게 연결하며, 세대 간의 갈등과 화해를 독창적인 방식으로 풀어낸다.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의 성장과 화해를 이렇게 독창적으로 풀어낼 수 있다는 점이 새로웠다. 영화는 정신없이 몰아치는 장면들 속에서도 감동을 놓치지 않는다. 코미디와 액션, 멀티버스라는 거대한 설정이 얽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중심에는 결국 가족이라는 핵심 주제가 자리하고 있다. 화려한 비주얼과 빠른 전개 속에서도 진정성 있는 감정을 놓치지 않는 방식이 인상적이었다.
시각적 연출의 색다른 조합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의 시각적 스타일은 말 그대로 '모든 것'이 한데 어우러진 느낌을 준다. 한 장면에서는 홍콩 액션 영화의 감성을 물씬 풍기다가, 곧바로 서양의 SF 영화에서나 볼 법한 화려한 CGI 세계로 넘어간다. 영화 속 차원들은 각기 다른 분위기와 색감을 가지고 있어, 시각적으로도 멀티버스를 제대로 표현해 낸다. 감독 다니엘스(다니엘 콴 & 다니엘 쉐이너트)는 현실적이면서도 초현실적인 분위기를 넘나들며, 시각적인 실험을 대담하게 시도했다.
특히 양자경이 보여주는 무술 장면은 오래된 홍콩 영화 팬이라면 반가워할 요소다. 그녀의 액션 스타일은 1980~90년대 홍콩 액션 영화의 감성을 떠올리게 하며, 절제된 몸짓과 역동적인 연출이 더해져 현대적인 감각으로 재탄생했다. 하지만 영화는 단순한 액션물에 그치지 않고, 판타지적인 요소를 적극 활용해 코믹하면서도 진지한,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예를 들어, '소세지 손가락' 세계에서는 어이없을 정도로 유쾌한 장면을 보여주지만, 그 속에도 인물들의 감정과 메시지가 담겨 있다. 처음에는 단순한 개그 요소처럼 보이지만, 결국 그 차원의 캐릭터들조차 서로의 관계를 통해 의미를 발견하는 과정이 묘사된다. 이렇게 영화는 황당한 설정 속에서도 인간적인 감정을 놓치지 않으며, 다양한 차원들이 단순한 시각적 장치가 아닌 서사의 중요한 부분으로 작용하도록 만든다.
또한 영화는 아시아적 감성과 서양적 영화 기법을 자연스럽게 결합해 새로운 매력을 만들어낸다. 무술과 철학적 메시지가 공존하는 홍콩 액션의 전통을 따르면서도, 유머와 빠른 편집, 실험적인 촬영 기법을 적극 활용해 현대적인 SF 영화의 감각까지 더했다. 이러한 연출 덕분에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는 기존의 멀티버스 영화와는 전혀 다른, 독창적인 스타일을 가진 작품으로 남게 되었다.
삶과 존재에 대한 진솔한 메시지
영화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예상보다 깊고 철학적이다. 멀티버스를 다루면서도 결국 중요한 것은 지금 이곳에 있는 사람들과의 관계라는 점을 강조한다. 수많은 가능성과 차원이 존재하지만, 그 모든 것보다 가치 있는 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과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순간들이다. 다양한 차원을 오가며 모든 것이 무의미하게 느껴지는 상황에서도 에블린은 결국 사랑과 유대를 선택한다. 이는 불교적 공 사상과도 연결되며, 동시에 서양의 실존주의적 메시지도 담고 있다.
특히 마지막 장면에서 에블린이 조이에게 나는 여기에 있고, 너와 함께 있을 거야라고 말하는 순간은 깊은 감동을 준다. 삶이 혼란스럽고 때로는 방향을 잃은 듯해도, 결국 중요한 것은 우리가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시간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다. 이 장면에서 양자경과 스테파니 수의 감정 연기는 진솔함과 강렬한 울림을 더하며, 관객들에게 가족 간의 갈등을 넘어 삶의 본질을 다시금 생각하게 만든다.
이 영화는 단순한 SF 액션을 넘어선다. 빠르게 변화하는 멀티버스 속에서 펼쳐지는 황당한 설정과 코미디 요소들이 가득하지만, 그 중심에는 언제나 깊은 감정과 인간적인 메시지가 자리하고 있다. 코미디와 감동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며, 유머러스한 장면 속에서도 캐릭터들의 진지한 감정선이 강하게 전달된다.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는 아시아와 서양의 문화적 경계를 허물면서, 가족과 정체성, 존재의 의미를 탐구하는 영화다. 화려한 비주얼과 독창적인 설정, 그리고 무엇보다도 진정성 있는 이야기로 많은 이들의 마음을 울렸다. 이 영화가 남긴 여운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도 이러한 창의적이고 감동적인 작품들이 더 많이 나오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