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표 또 다른 SF의 탄생
봉준호 감독의 신작 미키 17이 드디어 개봉했다. 설국열차와 옥자에 이어 다시 한번 SF 장르에 도전한 작품으로, 개봉 전부터 많은 기대를 모았다. 로버트 패틴슨, 스티븐 연, 나오미 아키, 마크 러팔로, 토니 콜렛 등 할리우드 정상급 배우들이 출연하며 더욱 화제가 됐다.
영화는 원작 소설 미키 7(에드워드 애슈턴)을 기반으로 하지만, 봉준호 감독의 독창적인 해석이 더해져 재미를 더했다. 복제 인간이 반복해서 죽고 다시 태어난다면 그것을 생존이라 할 수 있을까. 우주 개척 시대 인간성은 어디까지 유지될 수 있을까. 영화는 이러한 질문과 함께, 우주 개척의 과정에서 벌어지는 생존 경쟁과 정치적 갈등을 깊이 있게 그려낸다.
개봉 이후 영화에 대한 반응은 뜨겁다. 기생충 이후 봉준호 감독의 또 다른 걸작이라는 평가와 함께, 우주를 배경으로 한 인간 실존에 대한 철학적 이야기라는 호평이 이어지고 있다. 로버트 패틴슨의 연기 또한 큰 주목을 받으며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중요한 작품으로 남을 것으로 보인다. 이번 영화만큼 로버트 패틴슨이 정말 다른 사람처럼 보이는 작품은 또 없을 것이다.
미키 17이 던지는 우주 개척 시대 생존
영화는 인류가 새로운 행성을 개척해 나가는 미래를 배경으로 한다. 주인공 미키는 우주 개척을 위해 계속해서 다시 만들어질 수 있는 익스펜더블이란 직업에 지원하는데, 결국 인간의 한계를 경험하고 계속해서 만들어지는 복제 인간이다. 뭐가 되었든 위험한 임무를 수행하고 사망하면 다시 복제되어 태어나며, 이전의 기억을 그대로 유지한 채 또 다른 삶을 시작한다.
미키는 복제된 존재이지만, 생존을 위한 소모품처럼 취급된다. 임무를 위해 만들어지고, 단 한 명만 그런 역할이 있다면 보통 떠받들거나 중요시 여기는 일반적인 설정들과는 다르게 미키는 오히려 하대를 받는다. 죽어도 다시 태어난다면 그것을 생존이라 부를 수 있을까. 기억이 이어진다고 해서 같은 존재라고 할 수 있을까. 생명이 반복적으로 생산되고 버려지는 시대에 인간의 가치는 어디까지 인정될 수 있을까.
영화는 단순히 복제 인간의 윤리적 문제를 다루는 것이 아니라, 미키가 속한 우주선 내부의 사회 구조와 정치적 갈등을 통해 생존 경쟁을 더욱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복제 인간인 미키는 최하층 계급처럼 분류되며, 그의 존재는 우주선 내 권력자들에게 철저히 통제된다. 이러한 설정은 설국열차의 계급 구조와도 유사한 면이 있다.
크리퍼와 우주선 내부 사회 생존 경쟁
미키 17은 다양한 이야기 구조가 담겨 있어 더욱 흥미로운 영화다. 미키가 탐사하는 행성에서 마주하는 외계 생명체 크리퍼와 그를 둘러싼 우주선 내부 사회의 갈등이 주요한 서사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미키와 탐사팀은 행성 개척 과정에서 크리퍼라고 불리는 강력한 외계 생명체와 충돌하게 된다. 처음에는 인간에게 적대적이며 교섭할 지능이 없어 보이는 존재로 보이지만, 영화가 진행되면서 크리퍼에 대한 해석이 달라진다. 인간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는 단순한 위협처럼 보이지만, 사실 크리퍼들도 자신들의 터전을 지키기 위한 생존 본능에 따라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우주선 밖의 크리퍼라는 존재와의 갈등이 있는 동시에 미키가 속한 우주선 내부에서는 인간들 사이의 계급이 점차 고착화되며, 생존을 위한 정치적 음모가 벌어진다. 복제 인간인 미키는 최하층 계급으로 분류되며, 그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시스템의 틀을 깨야 한다. 이러한 설정은 설국열차에서 보여준 계급 사회와도 유사한 면이 있다. 마크 러팔로가 연기하는 정치적 지도자는 복제 인간의 존재를 필요악으로 여기며, 이를 이용해 본인이 가진 힘을 과시하고 권력을 유지하려 한다. 반면, 토니 콜렛이 연기하는 고위 관료는 미키를 마음껏 이용하다가 자신들의 뜻을 거역하자 존재 자체를 위협으로 간주하고 제거하려는 움직임을 보인다. 이처럼 미키 17은 우주에서 단순히 생존하는 것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아니라, 인간이 만들어낸 시스템 속에서 벌어지는 정치적 갈등과 권력 다툼을 세밀하게 그려낸다.
복제 인간과 윤리, 철학적 질문을 던지다
미키는 신체와 기억을 완벽히 지니고 있지만, 사람들은 그를 하나의 개체로 인정하지 않는다. 그는 단순한 도구일 뿐인가, 아니면 하나의 독립적인 존재로 볼 수 있는가. 새롭게 태어날 때마다 기존의 경험을 유지하지만, 환경과 감정이 달라지면서 사고방식도 변화한다. 그렇다면 그는 여전히 같은 미키인가, 아니면 전혀 새로운 개체인가. 미키 17은 미키가 17번을 다시 태어났다는 것인데, 미키 17이 아직 죽지 않은 상태에서 미키 18이 만들어져 혼란을 가져온다. 오리지널 미키에서 복제된 미키 17과 미키 18 은 둘 다 기존의 미키라고 할 수 있는 것일까? 분명 기존의 미키에서 복제된 미키임에도 17, 18 은 전혀 다른 성격이 발현된다.
봉준호 감독은 설국열차에서 계급 사회를, 기생충에서 빈부 격차를 다뤘던 것처럼, 이번 영화에서도 우주 개척 시대의 인간성과 윤리에 대한 깊은 고민을 담아냈다. 복제 인간조차 단순한 도구로 사용될 수밖에 없는 현실을 그리며, 기술과 생명의 가치가 충돌하는 순간을 포착한다.
미키 17은 기존의 SF 영화들과 차별화된 시선을 보여준다. 인터스텔라처럼 과학적 사실을 강조하기보다는, 사회적 문제와 인간 존재에 대한 질문에 초점을 맞췄다. 설국열차처럼 생존과 계급, 인간성을 이야기하는 봉준호 감독 특유의 색채가 드러난다. 이번 영화에서도 우주라는 새로운 무대를 배경과 복제인간이라는 주제로 인간성과 윤리에 대한 깊은 질문을 던졌다. 복제 인간 기술이 실제로 세상에 나타난다면 꼭 거쳐야 하는 고민들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