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영화사에서 '도둑들'만큼 다양한 캐릭터들이 살아 숨 쉬는 작품은 많지 않다. 2012년 개봉 당시 화려한 캐스팅과 흥미진진한 스토리로 주목받았던 이 영화는 단순히 보석을 훔치는 내용 이상의 매력을 담고 있다. 관객들은 각기 다른 매력을 지닌 캐릭터들 속에서 누군가에게 자연스레 감정 이입하게 되는데, 그 인물들을 깊이 있게 파헤쳐 보려고 한다.
김윤석 (마카오 박) - 냉철하지만 흔들리는 리더
'마카오 박'은 팀의 리더 역할을 맡지만, 쉽게 믿을 수 없는 인물이다. 그는 보석 '태양의 눈물'을 훔치기 위해 서로 다른 목적을 가진 도둑들을 모은다. 리더로서의 냉철한 모습과 달리, 그의 속내는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영화 내내 그는 팀을 통제하고 작전을 이끄는 동시에, 언제라도 상황을 반전시킬 수 있는 준비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분명 리더로서의 자질이 충분해 보이는데도 신뢰에 있어서는 문제가 있다.
관객들이 마카오 박에게 감정 이입하는 이유는 그가 단순한 악역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상황을 이용하고, 필요하다면 배신도 서슴지 않지만, 그 속에는 어딘가 상처받은 사람의 흔적이 남아 있다. 특히 '팹시'(김혜수)와의 복잡한 감정선은 그가 단순히 이익만을 추구하는 인물이 아님을 보여준다. 그가 진심으로 팹시를 사랑했는지, 아니면 그저 이용하려 했는지 영화가 끝나도 명확히 알 수 없는 점은 오히려 그의 캐릭터를 더욱 현실적이고 매력적으로 만든다.
김혜수 (팹시) - 강한 척하지만 여린 내면을 가진 여자
팹시는 영화의 시작부터 강렬하게 등장한다. 감옥에서 출소한 그는 과거의 배신을 씻어내기 위해 다시 한번 '마카오 박'과 손을 잡는다. 하지만 그녀의 진짜 목적은 단순히 돈이나 복수에 머물지 않는다. 팹시는 자신의 자존심을 회복하고, 스스로를 증명하고 싶어 한다.
그녀는 언제나 상황을 냉정하게 판단하고, 위험 속에서도 자신을 잃지 않는다. '예니콜'(전지현)과의 신경전에서는 노련미와 자신감이 엿보인다. 하지만 강한 겉모습과 달리, 그녀 역시 외롭고 상처받은 내면을 지니고 있다. 특히 마카오 박과의 마지막 대화에서는 그녀의 진심이 엿보이는데, 그 순간 관객들은 팹시의 복잡한 감정에 공감하게 된다. 세상에 맞서 싸우면서도 자신의 상처를 감추려 노력하는 모습은 많은 이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전지현 (예니콜) - 자유롭지만 현실적인 매력
'예니콜'은 영화 속에서 가장 통통 튀는 캐릭터다. 그녀는 젊고 매력적이며, 무엇보다 현실적이다. '태양의 눈물'을 손에 넣고 혼자 빠져나가려는 장면은 그녀의 성격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예니콜은 사랑이나 의리보다는 자신의 생존과 이익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예니콜의 매력은 그녀의 솔직함에 있다. 때로는 이기적일지라도, 그 모습이 가식적이지 않다. 그녀는 항상 자신이 원하는 것을 정확히 알고, 그것을 얻기 위해 노력한다. 그녀의 뻔뻔함에 웃음을 터뜨리면서도,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과 닮아 있어 묘하게 감정 이입을 하게 된다. 특히 건물 외벽을 오르는 장면은 예니콜의 자신감과 능력을 단숨에 보여주며, 그녀의 캐릭터에 생동감을 불어넣는다. 사람들을 이용하는 것에도, 본인의 매력포인트를 아는 것도 밉상이 될 수 없는 캐릭터.
'도둑들' 속에는 이들 외에도 잊을 수 없는 매력적인 캐릭터들이 아주 많다. 이정재가 연기한 '뽀빠이', 오달수의 '앤드류', 그리고 김수현이 맡은 '잠파노'까지, 각기 다른 개성과 사연을 가진 인물들이 이야기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김혜숙 배우님의 씹던껌은 특히나 스토리 전개에 빠질 수 없는 엄청난 존재감을 가지고 있다. 영화 속 모든 캐릭터들은 단순한 조연이 아니라, 각자의 이야기를 가진 주인공처럼 느껴진다.
결국 '도둑들'이 단순한 범죄 영화를 넘어 많은 사랑을 받은 이유는 여기에 있다. 영화 속 인물들은 완벽하지 않다. 그들은 각자 자신의 욕망에 따라 움직이고, 때로는 실수를 저지른다. 하지만 그런 불완전함이 오히려 더 인간적으로 느껴진다. 시간이 지나도 이 영화가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는 건, 우리 모두가 그들처럼 불완전한 존재이기 때문 아닐까?